2005년 NPT 검토회의에서 평화네트워크가 일본의 피스 데포와 함께 "원폭피해자는 동북아비핵지대를 주창한다" 는 주제로 워크샵을 주최하게 되었습니다
 

워크샵에서 배포되는
이 자료들은 평화네트워크 번역팀과 한국원폭피해자협회의 곽귀훈 선생님, 그리고 한국원폭2세환우회의 김형률 선생님께서 써주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평화네트워크 사무실로 문의바랍니다.

 

소외와 투쟁의 60년

현시내

한국인 원폭피해자에게 있어서 2005년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들에게 있어서 광복 60주년이나 원폭 60주년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1945년 8월 이후의 60년이라는 세월은  “소외와 투쟁의 60년”이었다고 부르는 것이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에게는 더 정확할 것이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의도적인 외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뒷받침했던 한국 내에서의 원폭에 대한 무지함, 혹은 원폭 불감증과 일본은 유일한 피폭 국가라는 인식이 이들을 더욱더 위축시킨 요인이었을 것이다.

 

한국에게 있어서 일본의 피폭은 광복을 가져다 준 선물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원폭의 참상보다는 그로 인해 천황이 패전을 선포하고 조선은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역사가 더 강조되어 왔다. 이는 실제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원폭 불감증 혹은 핵 불감증의 시초이기도 하다. 1945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원폭 피해자들은 원폭에 대해 무지한 한국인들로부터 냉대를 받아야 했다. 한센병 환자와 비슷한 증상으로 보여 고향에서 쫓겨나기도 했고 격리를 당하기도 했다. 그들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피폭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아보지도 못하고 다시 전쟁의 희생자가 되었다. 또한 원폭의 피해가 유전된다는 광범위한 인식으로 인한 고용불가, 결혼 기피, 보험대상제외 등과 같은 사회적 차별이 두려워 원폭피해자임을 밝히는 것을 더욱더 꺼려하게 되었다.

 

일본 정부 역시 이들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정부는 일본을 “지구상에 유일한 피폭국가”로 이미지화 하는데 주력하였기 때문에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자연스럽게 원폭 피해자 원호대상에게 제외될 수 밖에 없었다. 1974년 한국인 원폭피해자 손진두는 한국인도 원호법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한 수첩재판에서 승소하였지만 이는 재일 한국인에게만 적용이 되었다. 일본 정부는 1965년의 한일협정을 근거로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해 이미 정부차원의 배상을 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2005년의 곽귀훈 재판의 승소는 이러한 일본의 차별과 무관심을 조금이나마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화려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현실은 절박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일본 원호법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1세에 비해 한국정부와 일본정부 모두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2세의 문제도 그러하고, 여전히 한국에서는 원폭피해자의 존재 자체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1세대의 원폭기억은 아직도 2세에게 악몽으로 대물림 되고 있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차별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이와 더불어 원폭의 참상을 광복의 기쁨과 오버랩 시키는 원폭 불감증도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다.

 

원폭 피해자들의 인권에 대한 문제도 심각하다. 원폭후유증과 이로 인한 질병과 가난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인내해야 했던 이들은 최소한의 기본권조차도 보장 받지 못한 채 원폭의 악몽에서 지속적으로 고통 받고 있다. 특히 건강하지 못한 원폭피해자 2세의 경우에는 아무런 의료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생명권과 생존권을 위협당하고 있으며, 사회적 차별이 두려워 자신의 가족사를 숨기고 살아야 했다. 원폭 피해자 가족들은 평생을 죄책감과 피해의식으로 고통 받는 것이다. 또한 건강하지 못한 2세와 건강한 2세간에 미묘한 갈등이 존재하여, 어렵게 자신이 원폭피해자 2세라고 밝힌 이들도 같은 원폭 피해자들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지도 한국정부가 원폭피해자에 대해서 공식적인 지원의지를 밝히지 않고, 또한 기초적인 실태 조사 한번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한국 내에서의 원폭 피해자의 열악한 현실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이다.

 

1945년의 악몽, 이제는 깨어나야 할 때다

 

무엇보다도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적극적인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 실시와 지원정책 마련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특히 한국정부는 지금까지 일본정부에 원폭피해자 문제를 일임하고 무관심했던 태도를 버리고, 주체적으로 나서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원폭 피해자들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점점 그 생존자 수가 줄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제도의 마련이 지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원폭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지원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실제로 원폭 피해자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요인은 사회적 차별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안전망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과 대책마련은 그래서 원폭피해자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한국에서도 원폭 후유증을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원폭전문병원과 원폭후유증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진행할 전문연구소의 설립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원폭 피해자의 문제를 알려내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원폭의 참상을 동정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핵운동을 승화해내는 일은 어쩌면 한국의 평화운동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특히 일본의 피폭경험을 좀 더 냉철하게 평가하고, 핵무기경쟁의 결과가 결국 1945년의 악몽을 재현할 것이라는 인식을 확대시켜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원폭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전지구에 있는 원폭 피해자들간의 국제적 연대도 중요하다. 실제로 원폭의 기억은 많이 알려져 있어도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미약했다. 직접적인 원폭의 피해뿐만이 아니라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희생자와 같은 전반적인 핵 희생자들간의 연대는 핵과 핵무기의 공포를 알리고 ‘핵 없는 평화’가 가능하다는 공감대를 전지구에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역사와 현황 - 배정민 (평화네트워크 번역팀) [한글] [영어]
• 소외와 투쟁의 60년 - 현시내 (평화네트워크 자원활동가)
[한글] [영어]
• 한국인 원폭피해자 2세는 누구인가 - 현시내 (평화네트워크 자원활동가)
[한글] [영어]
• 한국에도 많은 원폭피해자가 있습니다 - 곽귀훈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
[한글] [영어]
한국원폭2세환우회는 NPT 국제회의와 미국시민사회에 다음과 같이 국제연대를제안합니다
  - 김형율 (한국원폭2세환우회 대표)
[한글]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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