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많은 원폭피해자가 있습니다
1. 왜 한국에 원폭피해자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한국인을 236만 명이나 강제 동원하여 일본에 끌고 가 태평양 전쟁에 참전시켰기 때문에, 당시 군사도시인 히로시마에는 5만 명, 나가사키에는 2만 여명, 총 7만 여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었고, 1945년에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들 중 4만 여 명은 그 해 말까지 사망하고, 2만 3천명은 한국에 귀국했고, 7천명은 일본에 남아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전체의 원폭피해자 70만 명중, 10%에 해당하는 수가 한국인 원폭피해자 들입니다.
2. 이들은 3중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첫번째는 강제로 연행되어 간 사람들이었고, 그로 인해 가공할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60년간이나 방치되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온 2만 3천명의 원폭피해자 중 90%는 사망하고, 지금 현재는 10%인 2,300여명만이 남았습니다.
일본정부는 한일협정에서 청산이 다 되었다고 주장하여 왔고, 한국정부는 일본에서 입은 피해니까 일본에 가서 호소하라고 서로 책임을 떠넘겨 왔습니다.
3. 우리는 일본정부를 상대로 재판투쟁을 계속하여 왔습니다
첫 번째 투쟁은 1972년 일본에 밀항 해 간 손진두가 원폭후유증을 치료할 수 있는 피폭자 수첩을 교부해 달라고 한 재판이었습니다. 3심까지 승리했으나 일본정부는 교부해 준 수첩이 국외로 나가면 무효라고 하는 통달을 내려 28년 간이나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원호를 거부해 왔습니다.
1998년부터 곽귀훈은 교부된 수첩이 국외로 나가면 무효가 된다는 통달 402호에 대한 법적 근거를 대라는 재판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2심까지 승리하고, 일본정부가 승복함으로써 재외 원폭피해자 5천 여 명에게 원호의 길이 열렸습니다.
4. 그러나 아직도 한국인 피폭자들은 구제되지 않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수첩을 교부 받기 위한 조건들이 까다롭고, 또한 꼭 일본에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노쇠한 원폭피해자가 자신의 피폭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인을 찾거나, 피폭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어렵고, 또한 거동도 불편해서 일본에 갈 수 없어서 아직도 7백 여 명이 무원호 상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원호를 받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5. 우리가 일본정부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수당 몇 푼이나, 의료지원금만은 아닙니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시인하고, 이를 사죄하고 보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 최초의 원폭피해자로서 다시는 이런 참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굳은 신념과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모두 폐절해야 하며 핵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고 국제사회에 촉구합니다. 그런 뜻이 꼭 성취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협조를 부탁합니다.
한국원폭피해자 협회 회원 일동
2005년 5월 10일
•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역사와 현황 - 배정민 (평화네트워크 번역팀) [한글] [영어]
• 소외와 투쟁의 60년 - 현시내 (평화네트워크 자원활동가) [한글] [영어]
• 한국인 원폭피해자 2세는 누구인가 - 현시내 (평화네트워크 자원활동가) [한글] [영어]
• 한국에도 많은 원폭피해자가 있습니다 - 곽귀훈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 [한글] [영어]
• 한국원폭2세환우회는 NPT 국제회의와 미국시민사회에 다음과 같이 국제연대를제안합니다
- 김형율 (한국원폭2세환우회 대표) [한글] [영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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